언제 : 2015.08.11
어디 : 운심의 무덤((雲心墓)
신안마을( 밀양시 상동면 안인리) 굴방늪 위쪽에 임자 없는 무덤이 있는데,
옛날부터 기생의 무덤 또는 운심이 무덤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운심은 조선 영정조 때 밀양 출신의 관기(官妓)로서 특히 검무에 능하여 한양까지 진출했으며,
18세기 말에 검무를 추는 한양기생들은 대부분 그의 제자였다.
이름 있는 당대의 한량들이 그와 교제하기를 원했지만 함부로 응하지 않았고
다만 광문이라는 의기 있는 걸인이 와서 청하면 옷을 갈아입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이 곳에 그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 오는 것을 보면 늙어서는 고향에 돌아와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무덤에 얽힌 전설도 있다.
운심이 밀양 관기로 있을 때 마음속으로 깊이 사모한 한 관원이 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면서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한탄하며 한양으로 갔다가 나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그 관원은 이미 다른 고을로 전출하여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병이 들어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운심은 한평생 잊지 못하는 그 관원을 그리워 한 나머지
측근들에게 내가 죽거든 관속들이 내왕하는 역원 근처 길 가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후 운심의 무덤은 이 신안의 역로 가에 있었던 꿀뱅이(蜜岩) 위에 안장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길 가의 이 무덤은 그 후 혼인이 늦은 처녀 총각들이 찾아와 벌초를 하고 가꾸면서
소원을 비는 대상이 되어 입에서 입으로 이 무덤의 존재를 전해왔던 것이라 한다.
雲心을 雲深이라 표기도 했으나 동일 인물이다. --- 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에 의함.
운심의 묘는 신안마을 회관에서 약 200여m의 거리의 야산에 있으며
묘 앞에서 보면 현재의 경부선과 지방도가 내려다보인다. 옛날 영남대로이다.
묘의 봉분은 10여년 전 태풍과 장마에 유실되고 흔적만 남아 있다.
밀양시는 운심의 검무와 러브스토리 등을 관광자원화하고 있다.
올 들어 묘지로 가는 길을 정비하고 묘역 주변을 정비해 안내판을 세우고,
기록이나 전해오는 운심의 이야기를 마을 담장에 벽화로 그려 신안운심문화마을로 가꾸고 있다.
신안마을회관 옆 운심의 사진이 세워져 있다. 정면으로 운심묘 가는 길이다. 이 곳에는 '운심묘 가는 길' 안내표시가 없다.
잠시 후 어느 고가의 대문 앞을 지난다. 장승이 서있고 탈곡기도 있다. 부자집인 듯하다.
대문 앞에서 우회전하면 운심묘 가는 길 안내판이 있다.
운심묘 가는 길은 밭 모퉁이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고무줄로 문고리를 만들어 걸어놓았다.
운심묘 150m 전이다.
조선 최고 검무의 명인 운심.
그녀의 화려했던 명성과 한 관원을 향한 일편단심 사랑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오고 있다. 내가 죽거든 관원들이 왕래하는
영남대로가 잘 보이는 고향의 역원 근처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운심의 무덤은 이 신원의 역로가, 꿀벵이 위에 안장되었다.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운심의 묘을 음력 8월 초하루에 벌초하면 노총각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원하면 임신을 하게 된다'는
전설에 전국팔도에서 많은 이들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도 자아냈다.
그 덕에 잘 보존되어 있던 봉분은 2006년 극심한 장마로 인해 사라져 버렸지만
매년 밀양검부보존회에서 음력9월9일 제향을 드리고 있다.
☞ 봉분이 없어 이 곳이 운심의 묘인지 모르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 약 5분간 알바를 하다가 뒤돌아 나오면서 보니
바로 이곳이 운심의 묘터이다.
되돌아 나오면서 본 운심묘. 5분전 지나갔던 그 자리이다.
너무나 비좁고 가파른 지역이라 처음에는 이 곳이 묘터라고 상상도 못했다. 다시 자세히 보니 봉분은 없지만 묘터가 확연하다.
조금 당겨 보면 발 아래에는 경부선 철로와 지방도가 지나가고,
멀리는 왼쪽으로 낙화산과 보두산에서 비학산으로 이어지는 일명 빨래판능선이 흘러내린다.
마을로 되돌아 내려오면서 본 폐가,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다.
신안운심문화마을 벽화에는 칼들이 날아다닌다.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
행복의 꽃을 피우세요.
운심아, 운심아 내 널 사랑한다.
신안운심문화마을 벽화를 시간관계상 다 둘러 보지 못하고---,
쌍검대무/ 신윤복 작
흥진첩/ 백하 윤순 작
제기운심묘(題妓雲心墓)/ 오횡묵 작
강남의 제일가는 기녀/ 선녀가 무산의 구름 타고 내려와/ 높은 하늘에 남긴 자취는/ 찬란한 자주빛 불꽃이어라/
그대는 본래 지혜로우니/ 아름다운 자질 어찌 없어지랴/ 어느 덧 미인도 늙어/ 뭇 사람과 애끓는 이별하고/
평생 아름다운 곳을 원했으나/ 결국 한 줌 무덤일세/ 적적한 꽃밭에서 새들이 우는 것은/ 그대 넋이 화한 것이겠지.
마을 입구의 벽화 일부분만 둘러보고 금시당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