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장대에서 바라본 경관. 지금은 잡목에 가려 동장대, 복천동고분군 등이 보이지 않는다.
↑ 백세의 계단. 걷고 또 걸으면 백세까지 ---.
↑ 동래읍성 북문.
↑ 내주축성비. 글씨가 많이 마모되었다.
↑ 장영실과학동산. ↑ 간의: 조선시대 천체위치 측정기기.
↑ 동래읍성 역사관.
↑ 동래읍성 조감도.
↑ 동래성 전투: 1592년 5월 25일(음력4월 15일) 왜군이 동래성 앞으로 몰려들었다. 송상현 부사는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전사이가도난)며 결사항전하다 전사했다. 당시 우리 군과 백성 4천여명, 왜군 1만5천명. ....
↑ 내주축성비 탁본.
↑ 역사관 앞에서 본 복천박물관(좌)와 복천동고분군(우) 고분군 너머 망월산 동장대.
↑ 서장대 가는 길.
↑ 동래읍성 서장대.
↑ 복원된 동래읍성.
↑ 정면으로 멀리 금정봉과 그 너머 백양산.
↑ 마안산 자비암 앞으로 내려온다. 이 길은 동래읍성 장대길이기도 하다.
↑ 송공단.
↑ 동시사란부녀위 .... 충렬공 송상현 순절비 등이 모셔져 있다.
↑ 동래시장 앞 '장에 가는 날'
↑ 동래독진대아문(좌). 동래부 동헌(우). 안쪽에 충신당(忠信堂)이 보인다.
↑ 충신당에 전시되어 있는 동래읍성 문루의 현판들. 무우루(남문), 지희루(동문),
↑ 심성루(서문), 은일루(야문).
↑ 복원된 동헌의 건물들.
↑ 동래도호아문. 반대편에는 망미루 현판.
↑ 남문터. 임진왜란 최대의 격전지.
↑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 도시철도 수안역사 내).
↑ 전사이 가도난(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 참사의 현장 동래읍성 해자.
↑ 발굴 유물.
↑ 임진왜란 동래전투의 참상.
.... 동래부사 이안눌의 '동래맹하유감'이란 글에서 ..... , '조손, 부모, 부부, 형제, 자매간에 무릇 생존한 자는 이 날에 죽은 친족을 제사지내고 통곡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노라니, 아전이 다시 말하기를 "곡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오히려 슬프기가 덜할 것이나, 휘두르는 적의 흰 칼날 아래 온 가족이 다 죽어서 곡해줄 사람조차 남기지 못한 집이 얼마나 많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라고 기술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