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015.01.31
어디 : 이중섭의 범일동풍경 등
이중섭의 범일동풍경과 전망대를 둘러보고 안용복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과 정공단에 들린다.
이중섭(1916~ 1956)은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의 한 사람이다. 호는 대향.
한국전쟁 때 부산 범일동에서 피난살이를 하였다.
안용복은 부산 좌천동 출신으로 독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인식하고 이를 지켜 낸 인물이다.
정공단은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에서 순절한 충장공 정발장군 등의 충령을 모신 단(壇)이다.
이중섭의거리는 여기서 부터 이중섭 전망대 까지 약 400m.
길가에는 그림, 행적, 편지 등이 타일벽화 형식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걸 먹고 요걸 먹고 얼른 나으란 말이지! " "--- 그 덕택인지 나는 그 후로도 세 번이나 괴질로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났다."
"1916 평양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다. 1925 아홉살 꼬마 아이 그림에 빠지다. 1935 일본을 극복하기 위하여 유학길에 오르다.
1945현해탄을 건너 연인을 찾아온 마사코는 이남덕으로 귀화하다."
"1950 6.25한국전쟁 때 부산 범일동에서 피난살이 1951 4월 제주도로, 12월 다시 범일동으로 ---.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으로---.
1956 격동의 40년, 짧은 삶을 마감하다.
평양 부호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서 일본인 아내를 맞고 , 오직 그림 창작만의 열정으로 굴곡의 삶을 살아낸
그의 내면은 남모를 고통과 자학(식음전폐)으로 피폐해지고 있었다. 영양실조와 고통을 겪으며 다시 음식을 거절하기 시작 극심한
간염으로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 한 달 후인 9월 6일 홀로 숨을 거두었다. "
"그리고 임종을 지키지 못한 남은 자들의 슬픔. 3일 뒤 그의 죽음을 안 친구들이 장례를 치르고 화장된 뼈의 일부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 다른 일부는 일본의 부인에게 전해져 그 집 뜰에 모셔졌다. ---"
이 곳 4거리에서 '→이중섭거리' 이정표를 따라 직진하면 안되고 우회전하여 넓은 길을 따라가야 한다.
"구상네 가족 1955" 그림 위로 담에 칠한 페인크가 흘러내린 흔적이 보인다. 진작 닦아야 했는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지워야 할 ---.
"춤 추는 가족 1953"
희망의 100계단, 실지는 180계단이다. 계단 중간 곳곳에 편지글이 쓰여있다. 이리저리 한 줄씩 읽어보며 올라간다.
"나의 소중하고 귀중한 귀여운 사람이여! 잘 있었소?
사흘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주오---.
방에 불을 땔 돈이 생기면 곧 작품을 시작하겠소, 기다려 주겠지요?
우표값이 없어 편지를 사흘에 한 통 낼 수가 없다는게 말이오.
가난 따위는 생각도 말아주오. 힘을 냅시다! 아고리도 사나이요.
푹 자고 내일은 걸작을 그릴 예정이요. 힘을 내서 버텨 봅시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소처럼 걸음을 옮기면서 안간힘을 다해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
이제 마지막 한고비요--.
당신과 아이들이 정말 보고 싶소---.
그대들 없는 홀아비 생활은 하루종일 마음을 공허하게 하오---.
아빠가 갈 때는 장난감 많이 사 갈께!
태현 태성에게 뽀뽀를 하나씩 나누어 주구려! "
"아빠가 사다 놓은 종이가 떨어져 한 장 밖에 없어서 그림을 한 장만 그려 보낸다. 엄마와 태성이 태현이 셋이 사이좋게 봐 다오."
"---밤 10시가 지나도록 그리고 있소. 술도 안 마신다오. 화이트가 없어 얼마 전부터 페인트를 대용으로 자꾸자꾸 그리고 있소. 괴로운 가운데서도 제작욕이 왕창 솟아 작품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소."
어느 흐름한 담벼락에 '중섭→' 표시가 되어 있다. 피란시절 혹시 이중섭은 이 집에 살았을까??
"그림도 손에 잡히지 않아 휘파람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시집을 뒤적이기도 하오."
맞은 편 벽에는 "지금은 싸늘하고 외로운 한 밤중, 뼈에 스미는 고독 속에는 혼자 텅 빈 마음으로 있소."
이중섭 전망대. 일명 마사코(이남덕) 전망대. 전망대 앞 유리에는 편지 글이 쓰여있다.
"나의 사랑하는 소중한 아고리, 마음에 맺힌 긴 편지 두 통 함께 보았습니다. 당신의 힘찬 애정을 전신에 느껴 남덕은 마냥 기뻐서 가슴이 가득했습니다. ---"
"그새 잘있었어요.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아빠는 태현이가 보낸 편지를 매일매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고, 엄마가 보내 준 사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령산
이중섭 전망대를 뒤로하고 산복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 부산포 개항문화관으로 간다. 왼쪽 전망대 벽에 소 그림이 보인다.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 "부산의 개항 역사가 시작된 곳, 영토분쟁 및 교섭의 출발점인 부산 동구의 역사적 위상과 개항 역사를 볼 수 있는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문화관에는 '부산포 개항 역사 이야기'
그리고 '안용복 장군의 독도수호 이야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정공단.(부산시 지정기념물 제 10호)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성과 운명을 같이 한 부산진 첨사 충장공 정발장군과
전사한 여러분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단과 비이다.
충장공 정발 전망비.
충장공 정발장군 비. 옆에는 막료 이정헌비, 군 민의 전망제공비, 열녀 애향비, 충복 용월비가 세워져 있다.
정공단 입구 오른쪽에는 매견시 목사 기념비가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매견시 목사(1865~ 1956) 기념비는 부산에서 한센질환자들을 위해 20년간 봉사하신 매견시 목사의 은덕을 기리는 뜻에서 1930년 6월 11일 세워졌던 기념비를 복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