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대 가려다가 다름재에서 내려서다

 

 11.35분 밤재터널 입구에서 차를 내려 바로 입산한다. 어제 밤부터 내리든 비는 조금 전 그치고

날씨가 맑아진다. 구름 걷히고 하늘이 파랗게 들어나니 기분이 좋아서 인가? 모두들 보무도 당당히

행군하듯 걷는다. 오후에는 비가 그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햇살이 비칠 줄은

기대하지 않았으니---. 기분 좋은 출발이다.

 

 30여분 걸어 밤재에 도착한 후에 간단한 입산식을 한다. '구구. 팔팔'을 외치고 능선으로 오른다.

99살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뜻이란다. 지나온 길은 양옆으로 소나무가 시원하게 자라는 임도를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수월하게 왔지만 눈앞에는 급경사 오르막이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직등 길을 버리고 옆으로 난 길로 둘러서 올라가니 두 분이 "앞서 가는 분들의 걸음이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 힘들다"고 하면서 천천히 걷고 있다. 이제 산행 시작인데---.

 

 능선 길을 따른다. 왼쪽은 남원 땅이고 오른쪽은 구례 땅이니 전·남북 경계선을 걷고 있는 셈이다.

왼쪽(북쪽)으로 멀리 남원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발아래에는 조금 전 우리가 타고 온 19번 도로가

들어난다. 등산로 오른쪽에는 철망이 높고 길게 설치되어 있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자 몇 분이 길이 아니라면서 되돌아온다.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등산로를 만나고

작은 도랑을 건너 또 한 봉우리에 올라선다. 등산로라고 말할 수도 없는 묵은 길이다. 진달래와 철쭉

등의 나뭇가지가 얼굴을 때리고 가시덩굴이 옷깃을 붙잡는다. 뒤에서는 배낭을 끌어당기기도 한다.

(실지로 반들반들 다져진 길보다는 이런 길을 걷는 것이 더 재미있고 등산하는 맛이 난다.)

 

 왼쪽어깨를 잡는 듯해서 오른쪽으로 피하면 오른쪽에서 잡고 또 피하면 왼쪽에서 잡고, 도대체 바로

걸을 수 없는 길이다. 손으로는 눈앞에 드리워진 가지를 헤치고, 좌우에 늘어져 길을 막고 있는

나뭇가지를 피하거나 넘어서 가야하니 오늘은 하체운동 뿐 아니라 상체운동도 엄청 많이 될듯하다.

 

 열심히 걷는데도 별로 속력이 나지 않고 더디게 나아가고 있다.

뒤에 오는 산우를 위해서 거추장스럽게 드리운 나뭇가지를 꺾어 보기도 하지만 역부족이고 그런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다. 그냥 걷는다. 적당한 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길이다. 안전거리 유지가 상책이다.

 

 점심때가 되었으니 식사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 살피며 걷는다. 곧 능선에 올라서고 도시락을 편다.

두 시간을 부지런히 걸었으니 밥맛이 꿀맛이다. GDS님의 매실주도 칡차도 꿀맛이다. 천천히 오는 팀을

기다리느라 출발이 좀 늦어진다. 강정님이 늦게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길을 놓친 듯하다.

아직도 뒤에 오는 이들이 몇 분 더 있다고 한다.

 

 13.50분 출발한다. 오름길이다. 산죽을 헤치고 나갈 때는 길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곳도 있다.

3~4m 앞에 가는 산우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무명봉의 북사면을 가로질러 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동남쪽으로 전망이 확 터진다. 노고단이 보이고 그 옆으로 반야봉이 운무에 반쯤 가려있다.

 

 15.25분 영제봉(靈帝峰)이다. 1,050m라고 하는데 등산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정면으로 만복대가 보이고 그 왼쪽으로 정령치와 고리봉의 모습이 들어난다. 만복대까지는 쉬지 않고

두 시간은 족히 가야할 거리인 듯하다. 하산 시간 한 시간 반을 감안한다면 너무 늦을 듯하다.

다름재에서 바로 내리기로 작정하고 출발한다.(15.30분)

 

 반월형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따라 간다. 온통 진달래와 철쭉, 또 싸리나무와 씨름하는 길이다.

15분쯤 지나 작은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니 선두팀이 되돌아오는 것이 보인다. 만복대까지 오르기엔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 하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름재까지 가야 하산길이 열린다.

되돌아오든 선두팀은 다시 다름재를 향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10여분 후 봉우리에 올라서니 다름재가 내려다보이고 곧 재에 도착(16.15분), 상위마을에서 출발하여

만복대를 거쳐 온 대구산악회원을 만난다. 만복대에서 내려오는 길이 굉장히 미끄러워 고생했다고 한다.

우리는 만복대를 포기함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다. 서둘러 내려갈 필요가 없다. 후미팀를 기다리며 짬을

내어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억새 사이로 파랗게 들어나는 하늘을 보면서 20여분쯤 쉬었다 출발한다.

 

 하산길 주변에는 고로쇠물 채취용 호스가 나무에 꽂혀 있는 것이 더러 보인다. 어제 내린 비 때문에

미끄러운 길을 20여분 내려오니 입산통제 입간판이 보인다. "이곳은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공간

이므로 영구적으로 출입통제하고 있으며 무단출입하면 과태료처분을 받게 된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고로쇠물 채취호스는 어떻게 설치할 수 있는지? 기이한 일이다.

 

 계곡 물이 불어나서 건너기 까다로운 몇 군데를 건너 내려오는데, 한 줄 두 줄 보이든 ‘고로쇠 호스’는

내려올수록 수 십 가닥으로 늘어나 전선줄처럼 이어진다. 사용하지 않는 호스도 수없이 방치되어있다.

생계용이라 하더라도 자연훼손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도 살고 사람도 살아야 하는데---.

 

 산수유는 필동 말동이고 (어쩌다 노란 꽃망울을 반쯤 터트린 것도 있었음)

17.40분 도로변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야생화를 디카에 담아보기도 하고, 무논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잠시 어릴 때를 회상하기도 한다. 산에 가면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만 들으면

된다고 하는데 오늘은 새소리 대신 개구리 소리를 듣는다.

 

 늦게 내려온 산님들을 기다리며 라면과 하산주를 한다. 산골이라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19.00경

차를 이용하여 도착하는 분이 보인다. 그분은 저혈당(?)이라든가, 어쨌든 힘든 산행을 한 것 같다.

버스는 19.15분 출발하여, B코스로 하산한 두 분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한다.

 

 산수유꽃도 이르고,시간이 늦어 처음에 예정했든 지리산 온천에 들리지 못하고---.

오늘은 후미대장과 총무가 참석하지 못해 진행에 약간의 차질이 생긴 듯하다.

                                                                                                 2005. 03. 22 유 산

 

 

 

 

 고사목의 형해

 

 다름재에서

 

 밤재에서

 

  전망대에서 본 노고단 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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