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부드러운 능선을 보다.

 

 산행버스는 단양 나들목을 빠져나와 충주호를 따라 단양시내로 들어간다. 고수교를 건너 고수동굴,

천동동굴 앞을 지나고 천동주차장에 세운다.(12.10분) 하차하여 10여분 쯤 걸어서 한일 유스호스텔

앞길에 모여 간단한 입산식 후 산행 시작한다.

 

 다리안교 입구에는 비로봉 6.6k, 국망봉 9.7k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다리 아래에는 맑은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다. 옛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 나는 산으로 들어가는데 너는 왜 산에서 나오는가"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고 돌길이 이어진다. 천동쉼터까지 공원관리차량이 다니는 길이라고 한다.

오른쪽 계곡에서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완만한 오름 길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가고 있다.

야외학습 나온 학생들까지 합해져 길이 복잡하다. 학생들의 인솔자는 줄을 맞추라고 소리 지른다.

 

 줄을 맞추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군대의 행군훈련도 그리하지 않는데, 인솔자의 과잉지도로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학습효과가 줄어들지 않을까? 고함소리는 등산객들에게도 소음이다.

 

 한 시간 20여분쯤 지나 해발 1,035m라는 천동쉼터에 도착한다. 물을 두 병 가득 담고 쉼터 위쪽의

공터에서 싱글님 부부, 산경님 등과 함께 도시락을 편다. 이미 식사를 마친 분들도 보인다.

식사 중 몇 분이 합석하고 식사를 마칠 즈음 땀이 식으니 추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서둘러 출발한다. 14.00분이다.

 

 잠시 후, 소백산 옹달샘 옆에는 산도님 강송님 등 몇 분이 식사를 하고 있다. 옹달샘에서 물 한

모금 마신다. 종이컵이 아닌 조롱박 모양의 바가지가 놓여 있다면 샘 이름과 더 어울릴 것인데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관심이 아쉽다. 입장료만 받을 일이 아닐 성싶다.

 

 나무계단을 한참 오르니 죽은 주목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다. 천년을 더 서 있을 듯 당당하다.

뒤돌아보니 조망이 트인다. 많은 등산객들이 내려오고 있다. 한 분이 정상이 멀지않으니 힘내라고

격려하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그 분은 10시 반경 비로사 주차장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주목 몇 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변의 여러 잡목 속에서 더욱 당당한 모습이다. 이곳은 눈이

내릴 때 설경이 한 경치 하는 곳이기도 하다. 디카에 담아 보기도 한다. 곧 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은 연화봉, 왼쪽은 비로봉 가는 길이다. 정면으로는 풍기읍 삼가리 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소백산이 초행인 듯한 분에게 희방사 가는 길을 가리켜주고 비로봉으로 향한다.

곧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 길을 따른다. 왼쪽은 주목감시초소를 지나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은 소백산의 부드러운 능선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저만치 오산님 부부가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나무계단이 비좁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14.55분 비로봉 정상. 오늘은 바람이 거의 없다. 많은 분들이 "왔노라 보았노라 찍혔노라"의

증명사진을 남기기에 바쁜 모습이다. 정상석 뒷면에 새겨진 글을 읽어본다.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 사이 솟았네. ---"

서남쪽으로 연화봉과 천문대가 보인다. 동북쪽으로 가야할 국망봉을 바라본다.

이정표에는 3.1k인데 먼 거리인 듯 느껴진다.

 

 앞 봉우리까지 이어진 계단을 내리고, 다시 오르니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왼쪽으로 보인다.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작은 바위봉을 우회하고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 한다. 나물 채취하는 주민들로

부터 참나물 한 개 얻어 풀밭을 살펴보지만 나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철쭉은 꽃봉오리만 맺었을 뿐

활짝 피려면 한 열흘은 지나야 할듯하다.

 

 국망봉 조금 못 미쳐 비로소 몇 개의 바위들이 모습을 들어나고, 하늘엔 뭉게구름이 떠있다.

국망봉 0.3k, 초암사 4.1k라는 이정표가 보인다.(이 길을 내려가면 초암사에서 버스 주차장까지 약 5k의

시멘트포장도로를 더 걸어야 하는 재미없는 길이다.)

 

 곧 국망봉에 닿는다. 안내판의 국망봉 이름 유래에 대한 몇 가지 중

"--- 마의 태자는 망국의 한을 달래며 소백산으로 들어와 이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즉 나라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국망봉이라 부른다는 설명이 있다.

학교 다닐 때 국어교과서에서 배운 정비석의 금강산 산행기 '산정무한'이 떠오른다.

(산정무한은 한국의 명문장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에 들어온 것은 천년 사직을 망쳐버린 비통을 한 몸에

짊어지려는 고행이었으리라. 울며 소매귀 부여잡는 낙랑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가 어떠했을까? 흥망이 재천이라, 천운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망국지한을 고행으로 창맹에게 베푸신 두터운 지혜가 천년 후에 따습다.

천년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지 또다시 천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웅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상월봉으로 간다. 상월암(岩)에는 구인사 창건주인 상월조사와 관련된 글이 새겨져 있다는데 바위를

이리 저리 둘러보아도 확인하지 못하고 1272봉에 올라간다. 뒤돌아보니 상월봉으로 올라오는 이 아무도

없다. 아마 A코스의 제일 후미 인 듯하다.

 

 조금 빨리 걸어, 늦은맥이재에 도착한 시간은 17.00분이다.

을전(乙田=새밭)과 어의곡은 6.1k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곳이다. 왼쪽으로 내려간다.

개울물 졸졸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깊은 산골짜기이다. 한참을 내려가니 몇 분이 보인다.

 

 쓰러진 나무둥치를 타고 넘기도 하고, 밑으로 기기도 하고, 밟고 넘기도 한다. 그러기를 여러 번,

왼쪽 계곡엔 물이 제법 많아지고 작은 폭포도 걸려있다. 강송님은 계곡에 취한 듯 디카에 담기 바쁘고,

조금 후 리비님, 마울님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계류를 건널 때 징검다리 건너듯 바위를 건너뛰는 재미도 있다. 선녀탕도 신선탕도 보인다.

그러나 물속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물이 차다. 손이 시리다. 임도를 만나고 10여분 걸어 내려오니

버스가 보인다. 18.35분이다.

 

 개울에 내려가 땀을 씻고, 리디님의 맥주에다 오산님의 복분자술을 보태어 하산주를 나누고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선두는 한 시간 전에 내려왔다고 하고, 후미는 이제 막 도착한다.

산행시간 거의 7시간쯤 걸린 셈이다. 버스는 19.10분 출발한다.

                                                                                    2005.05.24 유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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