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향적봉

 

 덕유산 향적봉은 높이 1,614m로, 나라 안에서는 한라 지리 설악산 다음인데 향적봉 옆 덕유평전의

설경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는 곳이다. 오늘은 송계사~덕유평전~향적봉~삼공리 코스로 눈 조금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으니 설경에 푹 빠져보는 산행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눈은 조금 내린다는 예보를 믿고, 우의는 차안에 두고 가도 될듯해서 꺼내 놓는다.

버스에서 내린 후 가벼운 준비운동과 인사를 하고 출발한다. 11.05분이다.

산악회의 일일 회비는 만원이다. 대신에 입장료는 각자가 내야하는데 총무가 거두어 일괄 매표를 하니 한결 수월하다.

물론 총무는 번거롭기도 하겠지만 그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당일회비는 실비 만원. 거기에다 산행코스 좋으니 얼마나 매력적이고 파격적인가?

산을 좋아하는 등산인의 입장에서는 가경천지 일일회원임을 자랑해도 좋을 듯하다.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사실 시내의 어느 산악회에서도 이만큼 알차고 빡시게 열심히 산행하는 곳이 없지 싶다.

 

 매표소를 지나 길 옆에는 크고 잘 생긴 소나무들이 보인다. 송계계곡, 송계사란 이름에 어울리는 소나무들이다.

잠시 후 송계사는 오른쪽으로 300m지점에 있다는 안내판이 있지만 대부분 그냥 통과한다.

절은 좋은 조망 터에 자리하므로 올라가 본다.

천년 고찰이고 원효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오지만 아무런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비구니 사찰이라고 한다.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되돌아 나와 삼거리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를 본다. 횡경재 2.9k, 향적봉 8.1k라고 쓰여 있다.

철망 문 안 쪽으로 들어간다. 길에는 눈이 덤성덤성 붙어있다. 5분쯤 올라가니 수리덤 이라는 암봉이

왼쪽으로 보인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면서 천천히 걷고 있는 몇 명을 앞질러 간다.

 

 지봉 갈림길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니 급경사 오르막길이다. 땀이 뚝뚝 떨어진다. 20여분 후에 지능선

안부에 올라 스페츠와 아인젠을 꺼내어 착용한다. 눈발이 조금 날리기 시작한다. 덕유평전의 설경을

제대로 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그 사이 많은 산우들이 앞서 간다. 계속 오르막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힘들게 올라간다.

눈 위에 눈이 또 내리니 설상가설이다. 진눈깨비가 아니고 함박눈이 펑펑 내려야 제대로 된 설경을 볼 수 있을 터인데,

함박눈을 내리기를 속으로 기원하면서 걷는다.

 

 12.35분, 하산하는 등산객 한 분을 만난다. 그는 아침 6시에 삼공리를 출발하여 칠봉을 거쳐서 오는

길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 길을 역순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5분 후 횡경재에 도착한다. 대간 길이다.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눈이 바람에 날려 얼굴을 때린다. 마스크를 올린다.

 

 등산로 주변엔 잎 떨어진 나무 가지가 눈을 잔뜩 올려놓고 있다. 나뭇가지들이 자신의 능력껏 눈옷을

입고 있다. 모두 흰색이지만 보기는 좋다. 등산로엔 약 1km 마다 향적봉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길 헷갈릴 염려 없고 현 위치를 알 수 있으니 안심인데 눈길도 잘 다져져 있다.

 

 진눈깨비는 계속 내리고 길 옆에서 몇 분이 식사를 하고 있다.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그냥 통과한다.

조금 더 가서 바위를 병풍 삼아 도시락을 꺼낸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 마신다.

쉬지 않고 걸어 왔으니 조금 여유를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많은 산우들이 지나간다.

눈이 거치지 않으니 차안에 두고 온 우의가 생각난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배낭 커버를 덮어씌우고 출발한다.

 

 14.05분, 이정표에 향적봉 2k라고 쓰여 있는 송계삼거리이다. 백암봉이라고 하지만 눈보라 때문에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다.

대간 길은 여기서 남쪽으로 이어지고 향적봉은 오른쪽(북쪽)이다.

 

 14.30분 향로봉 1k라고 쓰여진 중봉을 지나 곧 덕유평전으로 내려선다. 죽은 주목이 보인다.

사진 한 장 찍으니 카메라 밧테리에 경고등이 들어온다. 오늘은 실수 연발이다. 우의도 그렇고, 예비 밧테리 충전도 안 하고 왔으니.

 

 그런데 예상했든 만큼의 덕유평전의 설경이 없다. 상고대도 없다.

덕유산은 겨울 내내 상고대가 피어 있어 눈이 오지 않더라도 때 묻지 않은 순백의 미를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아쉽다.

상고대는 습기를 머금은 구름과 안개가 급격한 추위로 나무에 엉겨 붙어 만들어진 서리꽃을 말한다.

이 서리꽃은 해발 1,000m 이상 고지에서 영하 6도 이하, 습도 90% 이상일 때만 핀다고 한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14.55분, 향적봉 정상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보인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 왔을 듯한 한 이들도 더러

보인다. 설천봉으로 내려간다. 대장이 하산 길을 찾고 있다. 눈에 덮혀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길을 찾아 내려가다 길을 놓치고 길 없는 길을 눈 설매 타듯 미끄러지면서 내려가기도 한다.

눈이 너무 깊어 길을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용하게 길을 내면서 앞서간다.

 

 스키장에 올라섰다가 스키장 울타리 그물 망 옆길을 따라 내려가서 등산로를 찾았다.

그 길을 지날 때는 휴전선 철책선을 지키는 군인처럼 망을 잡고 조심조심 걷는다.

한 분이 미끄러졌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덕유산 신령님의 가호가 있었는가? 큰 덕(德), 넉넉할 유(裕)이니,

 

 16.20분, 표지석은 없지만 칠봉인 것 같다. 인월담 갈림길이 나오고, 잠시 쉬었다가 내려간다.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여러 차례, 산 속에는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설경이 펼쳐지지만 어둠 때문에,

또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18.10분경 삼공리의 네온사인이 시야에 들어오고 18.20분 경 도로변에 닿는다. 버스가 보이지 않아 잠시 헤맨다.

 

 곧 버스가 도착하고 급하게 김치라면과 하산주 한 잔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

잠시 후 늘 산행에 참석하여 선두그룹으로 달리든 한사장님이 어둠 속에서 걸음이 늦은 두 분을 가이드해서 내려온다.

등산인의 모범이 되는 분 같다.

차는 19.05분 출발한다. 캄캄한 밤, 차창 밖에는 눈이 퍼붓고 있다.

                   

                                                                                  2005. 01. 25. 유산.

 

※오늘 산행은 겨울철 눈 산행으로는 조금 무리인 것 같다.

산을 잘 타는 산 꾼들이지만 산을 보고 즐기는 맛도 있어야 하니 말이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는 말이 있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알뜰히 산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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