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유산

 

 출발한지 세 시간 쯤 지나 버스는 육십령식당매점 앞에 도착한다.

육십령은 옛날 산적이나 호랑이 때문에 60명이 모여서 넘어가는 고개라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매점 출입구만 빗자루로 썰어낸 흔적이 있고 앞마당엔 어제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다.

산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에도 온통 흰 눈 뿐이다. 오늘 산행 예감이 좋다.

 

 내리자마자 산행장비를 점검하고 스페츠를 착용한다. 아이젠을 착용하는 산우들도 더러 보인다.

11시경 인사하고 출발한다. 도로 건너편에 리본이 많이 달려있는 들머리가 보인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모자가 날려갈 지경이다. 모자 끈을 야무지게 고정시키고 능선에 올라붙는다.

 

 10여분 오르니 오른 쪽으로 채석장이 보인다. 산 하나를 절단 내버린 흉측한 모습이다. 기계소리도 요란하게 들린다. 백두대간능선이 아님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20여분 뒤 작은 고개에 올라서니 정면에 할미봉이 나타난다. 인자한 할미(=할머니)의 모습과는 반대로

여러 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 너머엔 구름인지 눈발인지 허옇게 보인다. 등산로 주변에 온통 눈꽃이다. 눈 구경하며 천천히 걷는다. 11시 50분, 할미봉을 통과한다. 그 앞에 세워져 있는 조망도에도 할미봉의 이름 유래에 관한 설명은 없다. 지리산이 조망된다.

 

 능선을 하나 올라서는가 싶더니 밧줄을 잡고 내려야 할 급경사 구간이 나타난다. 젊을 때 유격훈련 안 받은 분들의 통과시간이 더디다. 주변설경을 감상하며 기다린다. 모두 다 내려간 후에 마지막 후미대장

앞 순서로 내려간다. 눈이 내려 미끄럽기도 하지만 바위 사이가 너무 좁아 발 디딤이 까다로운 곳이다. ‘조심=안전’이고 ‘방심=사고’ 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10여분 걸으니 오른쪽으로 리본이 여러 개 달려있는 샛길이 보인다. 이정표는 없지만 아마도 청소년

교육원 쪽으로 갈 수 있는 탈출로인 것처럼 생각된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할미봉이 또 다른 모습이다.

13시 ‘교육원 1.6k, 육십령 5.2k, 남덕유 3.6k’ 라고 쓰여진 삼거리에 통과하여 조금 올라가니 한 분이 다리에 쥐가 나서 교육원으로 바로 간다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경사가 조금 심해지고 몸에 땀이 밴다.

체온 조절을 위해서 윗옷의 자크를 조금 내리고 걷는다.

 

 헬기장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마땅히 쉴 곳이 없어 눈길을 거의 두 시간 그냥 걷기만 했으니 피곤하다.

등산할 때는 목마르기 전에 물 마시고, 배고프기 전에 간식 먹고, 피로하기 전에 쉬어야 한다는데 잘 지켜지지 않는다. 마침 점심시간쯤 되었고 쉬었다 갈만한 장소이니 도시락을 꺼낸다. 몇 사람이 식사 중

이었고 뒤 따라 올라온 분들도 합류한다. 눈밭이므로 모두들 편안하게 앉아 식사할 형편은 아니다.

 

 점심시간만이라도 조금 여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안내등산은 항상 바쁘게 움직인다.

산행속도도 빠르고, 식사도 빨리 하고, 정상에 올라서면 조망의 즐거움은 아랑곳없이 내려가기 바쁘다.

오늘은 추워서 그런지 더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다. 커피 한 잔 마시는 사이에 대부분 출발하고

꼬랑지로 출발한다.

 

 경사가 가팔라진다. 주변엔 온통 눈꽃 잔치하는 것 같다. 산죽 잎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고 소나무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눈을 싣고 있다. 14시 30분쯤 한 줄기 바람에 구름이 걷히고 정상이 모습을 나타 내더니 순식간에 사라진다.

 

 설경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걸음은 자꾸만 더뎌지고, 눈은 눈 구경하느라 바빠진다. 아름다운 설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려하지만 역부족이다. 비슷한 속도로 가고 있는 산우들과 설경을 감상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다.

 

 14.55분, 해발 1,510m인 서봉이다. 남덕유산 서쪽에 있다고 서봉인데, 장수군에 있다고 장수덕유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덕유능선은 말할 것도 없고 지척에 있는 남덕유산도 보이지 않는다. 후미대장의 무전기에 선두대장의 남덕유 정상이라는 연락이 온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30여분

거리이지만 오늘은 눈길이라 가늠하기 어렵다.

 

 서봉을 내려서는 순간 구름 속에서 순식간에 남덕유산 정상이 보였다가 가려진다. 잠시 걸음을 멈춘다.

겨울산행의 진면목을 본다. 안부로 내려서는데 한 분이 다리 근육통이라면서 천천히 가고 있어 안티푸라민을 꺼내준다.

 

 15.50분, 1,507m인 남덕유산 정상이다. 이 무슨 조화인가? 하늘이 새파랗게 들어 난다.

새로 설치된 정상석 옆에 서 있는 분의 부탁으로 카메라 셔트를 누르고, 나도 한 컷을 부탁한다.

구름이 조금 걷히고 햇빛이 비치니 주변 산들이 들어 나기 시작한다. 서봉도 월봉도 보인다.

아! 좋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마스크는 얼어있지만 겨울산행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음이 마냥 즐겁다.

 

 겨울 산행의 백미는 눈꽃산행인데 완벽한 눈꽃을 감상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이번 겨울은 눈이

귀하다고 하는데 오늘 남덕유산에서 홈런을 친 것과 같다. 동참하신 회원 모두가 자연을 사랑하고

산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파르게 설치된 철 계단 몇 군데를 내려선다. 발판이 좁고 기울기가 심한데다 눈까지 붙었느니 조심

조심 내려온다. 철거된 구름다리 교각부근에서 카메라 밧테리가 소진된다. 놓친 고기가 커 보인다고

했던가? 눈꽃이 천지 삐까리로 피어있고 더구나 구름 속으로 햇살이 비쳐 나오니 아쉬움이 남는다.

 

 남강의 발원지, 참샘 200m지점을 통과하고 한참을 내려오다 너들 길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 찧는다.

귀찮아서 아이젠을 사용 안 한 탓인가? 다행히 내린지 얼마 지나지 않은 눈이라 얼지 않아 산행하는데

별 어려움 없다.

 

 매표소 앞 약수터에서 약수 한 모금 마시고 영각사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17.20 분이다.

선두는 약 1시간 전에 도착했다고 하며, 후미는 30여분 후에 도착한다.

눈꽃천지 눈꽃잔치에 빠진 남덕유산행은 행복이다.

                                                                                              2005.01.11 유산

 

 

 

 

 

 

 

 

 

 

 

 

 

 

 

 

 

 

 

 

 

 

 

 

 

 

 

 

 

 

'지난 산행 흔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유산 향적봉  (0) 2007.09.07
삼도봉  (0) 2007.09.07
소백산  (0) 2007.09.06
기백산  (0) 2007.09.06
해월봉 구리봉  (0) 2007.09.06

+ Recent posts